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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ight] AI 초과세수를 에너지 대전환으로 흐르게 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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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초과세수를 에너지 대전환으로 흐르게 하기

전력망이 여는 산업, 임팩트 자본의 역할, 지역에 남는 전환

 

글 박윤중 (소풍랩 리서치펠로우) | 기획·감수 한상엽 (소풍벤처스 대표)

 

국민배당금이 남긴 질문

지난 5월, ‘국민배당금’이라는 단어 하나가 한국의 주식시장과 정치권을 동시에 흔들었습니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AI와 반도체 호황이 대규모 초과세수로 이어질 경우, 그 과실을 국민에게 지속적으로 돌려줄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제안했습니다. 시장은 이를 기업의 초과이윤에 새 세금을 매기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였고, 코스피는 장중 한때 5% 가까이 급락했습니다. 김 실장은 곧 기업의 이익을 새로 걷자는 것이 아니라, 이미 늘어난 세수를 어떻게 활용할지에 관한 문제라고 설명했습니다.

소동은 가라앉았지만 질문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두 달 뒤 정부가 반도체 호황에서 발생할 추가 세수를 ‘미래대응기금’에 담아 미래·청년·지방·교육에 집중 투자하겠다고 발표하면서, 문제는 국가적 재정 의제로 옮겨갔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7월 13일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추가 세수를 AI 패권 경쟁의 골든타임에 활용할 전략적 투자 재원으로 규정하고, 반도체·AI 데이터센터·피지컬 AI 등 3대 메가프로젝트를 집중 지원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제 ‘나눌 것인가, 투자할 것인가’라는 첫 질문에는 상당한 방향이 정해진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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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투자한다는 결정은 논쟁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질문의 시작입니다. AI 호황이 만든 일시적인 재정 여력을 어디에 투입하고, 그 투자로 무엇을 남길 것인가. 필요한 발전소와 송전망을 제때 건설하는 일만으로도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돈이 AI 산업의 전력 부족을 메우는 데만 쓰인다면, 호황이 끝난 뒤에는 몇 개의 대형 시설과 공공부문의 부담만 남을 수 있습니다. 반대로 전력 인프라가 저장기술과 전력관리, 산업 전기화와 지역 에너지 서비스의 시장을 열고 그 안에서 새로운 기업과 자본이 성장한다면, 같은 지출은 다음 산업을 만드는 전환자본이 됩니다.

이 글은 AI 호황으로 예상되는 초과세수를 에너지 전환에 투입하자고 제안합니다. 다만 전력망 부족을 메우는 데서 멈추지 말자는 것입니다. 전력망 투자가 새로운 산업과 시장을 열고, 임팩트 자본이 그 위에서 성장하는 기업을 뒷받침하며, 전환의 물리적 부담을 감당하는 지역에 기업과 자산, 인력이 축적되도록 해야 합니다. 이 글은 전력망과 자본, 지역에서 일어나야 할 세 가지 전환을 살펴봅니다.

먼저, 추가세수의 성격부터 짚어야 합니다

이 돈의 성격부터 분명히 할 필요가 있습니다. 최근 해외 AI 재정 논의의 한 축은 자동화가 노동소득을 줄이고 기존 세원을 약화시킬 가능성에서 출발합니다. 이에 AI 기업의 지분을 공공이 보유하거나 초과이익을 공유하는 장치를 미리 마련하자는 제안도 나옵니다. 그러나 지금 한국에서 예상되는 추가 세수의 성격은 이와 다릅니다. 현재의 추가 세수는 AI가 영구적인 새 세원을 만든 결과라기보다, 고대역폭메모리와 AI 인프라 투자가 촉발한 반도체 슈퍼사이클이 법인세와 소득세를 늘리는 효과에 가깝습니다.

규모는 작지 않습니다. 로이터는 6월 보도에서 삼성증권의 추정을 인용해 올해 추가 세수가 정부의 당초 전망인 27조 원을 크게 웃돌아 최대 70조 원에 이를 수 있다고 전했습니다. 다만 이는 확정된 세수가 아니라 반도체 기업의 이익과 경제 전반의 파급효과에 따라 달라지는 추정치입니다. 세수 증가 가능성은 높지만, 정확한 규모와 지속기간은 불확실한 만큼 신중하게 다뤄야 합니다.

재원이 들어오는 시간과 지출이 이어지는 시간을 맞춰야 하는 이유입니다. 한두 차례 크게 들어온 돈을 매년 반복되는 지출에 묶으면 호황이 꺾인 뒤에도 상당한 부담이 남습니다. 반대로 회수 가능한 기금이나 장기간 생산성을 높이는 자산으로 바꾸면, 일시적 수입은 다음 세대의 선택지를 넓힐 수 있습니다. 초과세수 논쟁의 핵심은 액수뿐 아니라 그 시간을 어떻게 제도화할 것인가에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대규모 호황이 특정 산업과 기업에 부를 집중시킬 때, 사회가 택해온 길은 대체로 세 가지였습니다. 현재 구성원에게 곧바로 배분하는 길, 미래 세대를 위해 금융자산으로 보존하는 길, 그리고 기업과 산업이 성장하는 생태계에 다시 심는 길입니다. 세 선택은 서로 완전히 배타적이지 않지만, 목적과 성공을 판단하는 기준은 분명히 다릅니다.

분배하고, 보존하고, 생태계를 만드는 세 가지 길

첫 번째 길은 당장의 체감을 높입니다. 대만은 2025년 국제 정세에 대응한 경제·사회·민생·안보 회복력 특별법에 따라 1인당 1만 대만달러를 지급했습니다. 공식적인 목적은 ‘AI 배당’이 아니라 소비와 사회적 회복력을 높이는 것이었지만, 반도체 중심의 재정 여력을 현재 세대가 직접 공유한 사례로 볼 수 있습니다. 현금 지급은 불평등과 생활비 압박에 신속히 대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흑자가 생길 때마다 배당해야 한다는 기대가 굳어지면, 다음 호황의 재원을 장기 투자로 돌리기는 더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두 번째 길의 대표는 노르웨이입니다. 정부연기금 글로벌은 북해 석유와 가스에서 얻은 수입을 현재와 미래 세대가 함께 누릴 금융자산으로 바꾸었습니다. 이 펀드는 석유수입의 변동으로부터 경제를 보호하고 장기 저축을 축적하며, 국내경제의 과열을 막기 위해 해외에만 투자합니다. 국내 산업을 육성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애초에 다른 문제를 풀도록 설계된 제도입니다.

아일랜드는 보존과 국내 산업투자를 서로 다른 그릇에 담았습니다. Future Ireland Fund는 고령화와 장기 재정부담에 대비하고, Infrastructure, Climate and Nature Fund는 경기 악화와 기후·환경 인프라 지출에 대응합니다. 별도의 Ireland Strategic Investment Fund는 상업적 수익과 아일랜드의 경제활동·고용 지원이라는 두 목표를 함께 추구합니다. NTMA의 2025년 연차보고서에 따르면 ISIF는 2025년 말까지 97억 유로를 투자해 137억 유로의 민간 공동투자를 끌어냈습니다.

이 비교가 말해주는 것은 한국도 어느 선진국의 정책을 그대로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같은 돈을 다루더라도 보존과 산업투자는 성과를 묻는 기준이 달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보존기금은 부를 얼마나 안정적으로 지키고 재정의 변동성을 낮췄는지를 봅니다. 산업투자는 얼마나 많은 고객과 기업, 민간자본, 기술역량과 고용을 만들어냈는지를 물어야 합니다. 한국의 미래대응기금은 이제 막 방향이 제시된 제도입니다. 세부 설계가 열려 있는 지금, 에너지 인프라 지출과 산업생태계 투자를 구분하면서도 연결할 기준이 필요합니다.

가장 전략적인 투자처는 에너지 전환입니다

AI 호황과 에너지 전환은 서로 떨어진 의제가 아닙니다. 지금의 AI·반도체 호황은 본질적으로 전력 집약적입니다. 7월 24일 SK그룹과 엔비디아는 한국의 AI 팩토리와 클라우드 인프라를 장기적으로 최대 2기가와트 규모까지 확대하는 협력을 발표했습니다. 엔비디아의 공식 발표에서 2기가와트는 당장 확정된 부하가 아니라 장기 구축 목표입니다. 그럼에도 발전소 몇 기에 맞먹는 계획이 산업의 시간표에 들어왔다는 사실은 전력·송전·저장·냉각과 용수가 더 이상 부수적인 비용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반도체 클러스터도 같은 문제를 드러냅니다. 정부는 호남권 신규 반도체 산단에 2030년까지 조기에 전력을 공급하고, 재생에너지의 변동성을 보완할 ESS와 양수발전을 제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반영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동시에 호남의 무탄소 전원을 산업과 지역 성장의 기반으로 삼겠다고 설명했습니다. 전력 인프라와 산업입지, 지역발전이 이미 하나의 정책 묶음으로 다뤄지고 있는 것입니다.

문제는 산업과 전력망의 시계가 다르게 흐른다는 데 있습니다. 공장과 서버는 기업의 투자 판단에 따라 수년 안에 지을 수 있지만, 대규모 송전선과 변전설비에는 입지 선정, 인허가, 주민 협의와 기자재 조달까지 훨씬 긴 시간이 필요합니다. 정부가 3대 메가프로젝트 지원안에 ‘첨단산업 전력·용수 공급을 위한 인프라 혁신전략’을 별도 항목으로 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이제는 AI 산업정책이 전력정책을 기다리게 할 것이 아니라, 두 정책의 시간표를 처음부터 함께 설계해야 합니다.

이 때문에 에너지 전환은 다른 장기 투자처와 구별됩니다. 에너지 전환은 AI 산업을 지원하는 보조 인프라에 그치지 않습니다. 전력망은 반도체와 데이터센터를 넘어 제조업의 공정, 건물의 냉난방, 운송수단의 전기화를 함께 가능하게 하는 범용 기반입니다. 몇몇 기업의 수요를 충족하는 데서 끝나지 않고 경제 전반의 생산성과 탈탄소, 지역의 산업입지를 동시에 바꿀 수 있다는 점에서, 일시적인 초과세수를 장기 자산으로 전환할 전략적 가치가 큽니다.

그렇다고 초과세수를 특정 기업의 전기요금을 대신 내는 데 쓸 수는 없습니다. 최근 소풍의 브리핑 AI의 전기요금은 누가 지불할까요에서 살펴봤듯, 미국에서는 데이터센터 같은 대형 전력수요가 유발하는 발전·계통 비용을 어떻게 분리해 계산하고 부담시킬지를 두고 여러 제도가 경쟁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비용분담 원칙을 더 정교하게 마련해야 합니다. 다만 이 글의 목적은 어느 수요자가 비용의 몇 퍼센트를 부담해야 하는지를 정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대형 수요가 유발한 비용을 투명하게 측정해야, 그 비용을 줄이는 저장·수요관리·계통기술의 가치에도 제대로 가격을 붙일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합니다.

하지만 전력망을 더 짓는 것만으로 그 가능성이 저절로 실현되지는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인프라가 어떤 가격과 계약을 만들고, 어떤 새로운 기업의 시장을 열도록 설계되는가입니다.

전력망은 종착지가 아니라 새로 열릴 시장의 기반이어야 합니다

에너지 전환을 발전소의 숫자로만 이해하면 전력망은 생산한 전기를 옮기는 선로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재생에너지 비중이 높아질수록 전기의 가치는 얼마나 많이 생산했는가만으로 결정되지 않습니다. 언제 생산됐는지, 어느 지역에서 필요한지, 얼마나 정확히 예측할 수 있는지, 필요할 때 저장하거나 소비시간을 옮길 수 있는지가 발전량만큼 중요해집니다. 전력망과 이를 운영하는 제도는 전기의 시간과 장소, 예측 가능성과 유연성에 새로운 가격을 부여하고 계약을 만들어냅니다. 바로 여기에서 경제지리학자 브렛 크리스토퍼스의 <가격이라는 함정>이 던진 역설이 중요합니다. 태양광과 풍력의 발전단가가 낮아졌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한 민간투자가 뒤따르지는 않습니다. 투자는 기술의 단가보다 예상되는 수익과 위험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같은 시간대에 재생에너지 발전이 몰리면 도매가격이 낮아지고, 접속 지연과 출력제어, 금리와 긴 건설기간은 현금흐름을 흔듭니다. ‘가장 싼 발전원’과 ‘투자할 만한 자산’ 사이에는 제도와 계약이 메워야 할 간극이 있습니다.

영국과 유럽연합의 최근 에너지정책은 바로 이 간극을 산업정책의 과제로 다루고 있습니다. 영국의 Clean Power 2030 Action Plan은 전력망 접속 개혁과 대규모 저장, 소비자 주도의 유연성을 청정전력 달성의 핵심으로 둡니다. Clean Flexibility Roadmap은 스마트 전기차 충전과 히트펌프, 가정용 배터리, 장주기 저장, 국가 간 연계선을 하나의 유연성 체계로 묶습니다. EU의 Clean Industrial Deal도 전력망과 전기화, 청정기술 제조, 중소기업의 전력구매계약을 산업경쟁력 정책으로 연결합니다.

이 정책들의 공통점은 기후산업을 태양광·풍력·배터리라는 기술 목록에 한정하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전기차는 이동수단인 동시에 전력을 저장하고 판매하는 자원이 되고, 건물 난방은 가스기기 중심 시장에서 히트펌프와 에너지서비스 시장으로 이동합니다. 데이터센터는 막대한 전력을 소비하지만, 연산시간 조정과 저장장치, 전력전자와 고효율 냉각기술의 거대한 고객이 될 수도 있습니다. 기존 발전소 부지는 계통접속권과 냉각·송전설비를 활용해 새로운 에너지·데이터 인프라로 재편될 수 있습니다. 전환은 특정 기술의 보급을 늘리는 일을 넘어 기반시설과 인접 산업의 경계를 다시 긋는 과정입니다.

한국에서도 이런 변화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현대자동차그룹은 7월 글로벌 V2X 서비스 ‘AllDayEnergy’를 출범시켰습니다. 전기차 배터리를 가정과 건물, 전력망에 연결하는 서비스가 개별 실증을 넘어 하나의 글로벌 사업 브랜드로 발전한 것입니다. 식스티헤르츠는 분산된 태양광·풍력·ESS를 묶어 발전량을 예측하고 제어하는 가상발전소 솔루션을 운영합니다. 두 사례는 자동차와 소프트웨어 기업이 전력산업의 새로운 참여자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 시장에서 중요한 것은 설비의 숫자보다 설비가 어떤 수익을 얻을 수 있는가입니다. ESS 설치를 의무화하더라도 실제 충·방전과 시장 참여에 대한 보상이 없다면 값비싼 장비가 유휴자산으로 남을 수 있습니다. 반대로 시간대별 가격과 용량·보조서비스 보상, 투명한 정산체계가 마련되면 같은 설비가 전력망 비용을 줄이는 자원이 됩니다. 정부가 2026년 낮 시간대 전기요금을 낮추고 주말 할인을 도입하는 한편, ESS 확충과 허수 접속용량 회수를 추진한 것도 발전량 중심의 제도에서 시간과 이용가치 중심의 제도로 이동하는 과정입니다. 기후에너지환경부의 성과 발표에서 이러한 변화의 방향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초과세수는 이 시장을 여는 데 어떻게 쓰여야 할까요. 초과세수가 공통 인프라와 실증, 초기 구매를 앞당기는 재원이라면, 정부와 규제기관은 그 투자가 반복적인 시장으로 이어지도록 접속·정산·보상 규칙도 함께 바꿔야 합니다. 우선 송·배전망을 보강하는 동시에, 기업들이 어느 지역에 접속 여력이 있고 어디에서 혼잡과 출력제어가 발생하는지 확인할 수 있는 계통정보 기반을 갖춰야 합니다. 전력망의 물리적 용량만큼이나 그 용량을 누가 언제 이용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데이터가 새로운 기업의 진입을 좌우하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저장·전력관리 기술을 실제 계통에서 검증할 환경도 필요합니다. 공공기관과 대기업의 실증사업은 장비를 한 차례 시험하는 데서 끝나지 않고, 운전기록과 성능 데이터를 축적해 후속 구매와 장기계약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첫 고객을 만들어주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다음 고객도 같은 기술을 다시 선택할 수 있도록 공통의 평가기준과 신뢰할 만한 기록을 남겨야 합니다.

구매와 투자 기준도 초기 가격에서 장기적인 시스템 가치로 옮겨가야 합니다. ESS라면 가격뿐 아니라 안전성과 수명, 실제 이용률과 계통기여도를 함께 평가해야 합니다. 전력관리 기술에는 얼마나 많은 혼잡과 비용을 줄였는지에 따라 보상할 필요가 있습니다. 가장 싼 장비를 사는 방식에서 벗어나, 장기간 전력 시스템의 비용을 낮추는 기술을 선택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결국 초과세수가 앞당겨야 하는 것은 시설 하나가 아니라 공통 인프라와 검증 가능한 데이터, 반복적인 수요가 이어지는 시장입니다. 돈이 시설에만 들어가면 개별 프로젝트가 남지만, 인프라와 정보, 실증과 구매를 연결하면 산업이 남습니다.

지역을 전력 공급지가 아니라 전환의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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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력망이 여는 시장은 추상적인 공간에 생기지 않습니다. 에너지 전환은 본질적으로 지역에서 일어납니다. 태양광과 풍력, 원전과 산업단지, 데이터센터와 전력수요는 서로 다른 곳에 놓여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접근은 발전지역에서 만든 전기를 수도권 수요지로 옮기는 데 집중했습니다. 전기 고속도로는 필요한 인프라입니다. 그러나 송전망만 늘리면 지방은 토지와 설비의 부담을 지고, 수도권은 전력과 고급 일자리의 편익을 가져가는 기존 분업이 오히려 더 효율적으로 굳어질 수 있습니다. 결국 수도권 집중의 구조를 강화할 위험이 있습니다.

전기를 옮기는 동시에, 전기를 사용하는 산업과 새로운 기업이 에너지가 있는 지역에서 성장하도록 해야 합니다. 정부가 미래대응기금의 핵심 투자대상에 지방을 포함하고, 호남 반도체 산단을 무탄소 전원 기반의 성장거점으로 제시한 것은 중요한 출발점입니다. 그러나 지역에 대형 공장 하나를 유치하는 것만으로 전환이 완성되지는 않습니다. 핵심 장비와 공급망, 연구인력과 금융수익이 모두 수도권이나 해외에 남는다면, 지역은 여전히 토지와 물, 전력만 제공하게 됩니다.

AI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클러스터는 이러한 가능성과 위험을 동시에 보여줍니다. 저장장치와 전력관리 소프트웨어, 고효율 냉각과 물 절감, 폐열 활용, 분산전원과 산업 전기화 기술이 실제 환경에서 검증되고 첫 계약을 얻을 거대한 수요처가 될 수 있습니다. 공공기관과 대기업이 이 수요를 지역 중소기업과 스타트업, 대학과 인력양성 체계에 연결한다면 지역은 전기를 보내는 곳에서 솔루션을 생산하고 수출하는 곳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연결하지 못하면 대형 투자는 지역의 장기 역량으로 남지 않습니다.

중국 닝더는 한 기업이 지역의 혁신지형을 얼마나 크게 바꿀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세계지식재산기구의 2025년 혁신 클러스터 분석에서 상대적으로 인구 규모가 작은 닝더는 중국 배터리회사CATL의 특허활동에 힘입어 세계에서 혁신집약도가 가장 높은 지역 가운데 하나로 올라섰습니다. 그렇다고 한 기업의 성공이 지역의 균형발전을 자동으로 보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핵심 기업과 공급망, 연구개발과 지역 인력이 함께 축적될 때 산업입지가 단순한 생산기지를 넘어 혁신생태계가 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동시에 단일 기업에 대한 지나친 의존을 어떻게 피할지도 함께 물어야 합니다.

하동의 정의로운 전환은 반대편의 빈칸을 보여줍니다. 한국남부발전과 하동군은 석탄발전 폐지에 대비해 양수발전과 대체전원, 주민지원 등을 묶은 약 1조 5,000억 원 규모의 구상을 제시했습니다. 그러나 최근 보도는 구체적인 고용 전환계획이 아직 비어 있다고 지적합니다. 발전설비를 교체하는 것과 지역의 산업·노동 전환은 같은 일이 아닙니다. 어떤 기업과 직무가 생기고 기존 노동자가 새로운 기회로 이동할 경로까지 설계돼야 비로소 정의로운 전환이 됩니다.

지역의 비용과 편익이 불투명하면 전환은 정치적 갈등으로 바뀝니다. 미국의 농촌과 소도시에서는 데이터센터의 전기요금과 물 사용, 소음, 디젤 비상발전기를 둘러싸고 허가 중단과 규제 요구가 확산되어 왔습니다. 뉴욕주가 7월 신규 초대형 데이터센터의 환경 관련 허가를 일시 중단하고 비용분담과 지역사회 투자 규칙을 마련하기로 한 것도 이런 갈등에 대한 대응입니다. 뉴욕주의 대응을 한국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지역에 돌아가는 일자리와 세수보다 부담이 더 구체적으로 보일 때 사회적 수용성이 빠르게 약해진다는 교훈은 참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따라서 지역 분배는 전환이 끝난 뒤 과실을 나누는 부록이 아닙니다. 지난 에세이 에너지 전환의 비용을 설계하는 자본에서 살펴봤듯, 비용 절감과 반복적인 소득, 지역기업의 조달과 주민의 자산 참여처럼 구체적인 수혜 주체를 만드는 일은 정책과 사업의 지속성을 높입니다. 정부가 햇빛·바람·계통소득의 전국 확산을 재생에너지 기본계획에 담은 것도 같은 방향입니다. 지역은 단순한 보상 대상이 아니라 전환의 자산과 기업, 인력과 이해관계가 축적되는 공동생산자가 되어야 합니다.

에너지 전환은 임팩트 자본의 다음 성장시장이 될 수 있습니다

이 지점에서 임팩트 자본의 역할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에너지 전환은 임팩트 투자와 거리가 먼 대형 인프라 자본만의 영역이 아닙니다. 전력망이 산업 플랫폼으로 확장되면서 시스템의 비용과 자원 낭비를 줄이는 기업의 제품이 인프라의 성능과 비용을 좌우하게 됩니다. 재생에너지 발전량을 더 정확히 예측하는 소프트웨어, 디젤발전기를 대체하는 이동형 ESS, 산업열을 전기화하는 장비, 물과 냉각에 드는 자원을 줄이는 기술은 환경성과와 고객의 비용 절감이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사업입니다.

그러나 자본시장은 모든 기후기술을 같은 방식으로 대하지 않습니다. 연구개발과 초기 실증에는 벤처·정책자금이 상대적으로 접근하기 쉽고, 검증된 발전소와 송전망에는 인프라 금융이 들어올 수 있습니다. 반면 초기 매출을 만든 하드웨어 기업이 반복 가능한 프로젝트와 대형 계약으로 넘어가는 중간 단계에는 여전히 자본 공백이 큽니다. 기후테크의 고질적인 ‘missing middle’은 소프트웨어 스타트업의 성장공식을 물리적 인프라 기업에 그대로 적용해온 금융구조의 한계를 보여줍니다. AI 전력수요가 커지면서 에너지 인프라 자금은 늘더라도, 그 돈은 대형 프로젝트와 이미 검증된 기업에 먼저 몰릴 가능성이 큽니다.

상업자본이 들어오기 전의 손실을 대신 부담하라는 요청이 아닙니다. 임팩트 자본도 수익을 내고 규모를 키워야 지속될 수 있으며, 기업이 성장할수록 그 성과에 함께 참여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전환 과정에서 새롭게 생기는 문제를 어떤 기업이 풀 수 있는지 먼저 정의하고, 기술과 시장, 정책의 언어를 연결하는 전문성을 축적하는 일입니다. 이런 경계영역을 읽고 연결하는 일은 임팩트 투자가 쌓아온 전문성과 맞닿아 있습니다. 초기기업을 발굴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후속투자와 공동투자를 통해 기업이 인프라 산업의 핵심 공급자로 성장하는 과정에 계속 참여해야 합니다.

소풍의 포트폴리오를 보면 그 역할이 더 구체적으로 드러납니다. 식스티헤르츠는 발전소를 직접 짓기보다 흩어진 자원을 예측하고 운영해 계통에서 거래할 수 있는 가치로 바꿉니다. 이온어스는 이동형 ESS를 활용해 건설현장과 행사장, 충전·재난 현장에서 디젤발전기가 맡아온 전력공급을 전동화하려 합니다. 이온어스의 이동형 ESS 사업처럼 아직 표준적인 자산분류와 금융방식이 자리 잡지 않은 사업은 기술만 평가해서는 투자하기 어렵습니다. 고객이 실제로 어떤 비용을 줄이는지, 규제와 정산이 어떻게 바뀌는지, 반복 구매와 유지관리 수익이 가능한지를 함께 살펴야 합니다.

임팩트 VC가 전력시장의 규칙과 공공조달, 대형 프로젝트 금융을 혼자 설계할 수는 없습니다. 정부와 규제기관은 접속·가격·정산 규칙을 만들고, 한전과 공공기관·대기업은 실증환경과 데이터, 초기 계약을 제공합니다. 인프라 금융은 검증된 자산을 큰 규모로 반복 배치합니다. 임팩트 투자자의 비교우위는 이러한 변화의 경계에서 새로운 기업을 발굴하고, 첫 고객과 산업 파트너, 후속자본을 연결하며, 투자 현장에서 발견한 제도적 병목을 생태계의 의제로 끌어올리는 데 있습니다.

성과를 평가하는 기준도 달라져야 합니다. 몇 개 기업에 얼마를 투자했는지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투자기업이 첫 실증 이후 반복적인 계약을 만들었는지, 시스템의 비용과 탄소를 실제로 줄였는지, 후속자본을 유치하면서도 임팩트의 방향을 지켰는지 살펴야 합니다. 투자자 역시 더 큰 후속 라운드와 인프라 협업에 참여할 역량을 축적했는지 평가받아야 합니다. 기후테크가 인프라 산업으로 확장되는 지금은 임팩트 자본이 주변으로 물러날 때가 아닙니다. 임팩트의 눈으로 발견한 문제와 기업을 바탕으로 전환산업을 장기적으로 지원하고 공진화할 자본역량을 축적할 기회입니다.

결론: 전환의 에너지를 어디로 흐르게 할 것인가

5월의 국민배당금 논쟁과 7월의 미래대응기금 발표를 겹쳐 놓으면 질문의 변화가 보입니다. 처음에는 AI 호황의 과실을 누구에게 돌릴 것인가를 물었습니다. 이제 정부는 추가 세수를 전략적 투자로 전환하겠다는 방향을 제시했습니다. 다음 질문은 그 투자가 어느 산업과 지역, 어떤 자본에 축적될 것인가입니다.

에너지 전환은 이 질문에 답할 수 있는 가장 전략적인 영역입니다. AI와 반도체 산업에 필요한 전력 기반을 마련하는 동시에, 저장과 전력관리, 전기화와 에너지서비스라는 다음 산업을 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성공을 송전선의 길이나 발전용량만으로 평가해서는 안 됩니다. 인프라 투자 뒤에 국내 기업의 반복적인 고객과 계약이 남는지, 임팩트 자본이 기업과 함께 성장하며 전문성을 축적하는지, 전환의 토지와 비용을 부담한 지역에 기업과 인력, 소유권과 수익이 남는지를 함께 물어야 합니다.

이 세 가지는 서로 분리된 목표가 아닙니다. 반복적인 고객과 계약을 얻지 못한 기후기술은 실증사업과 지원사업에 머물기 쉽습니다. 지역의 동의를 얻지 못한 인프라는 지연되고, 성장하지 못한 임팩트 자본은 좋은 스타트업을 발견해도 끝까지 동행하기 어렵습니다. 반대로 전력망 투자가 새로운 수요와 계약을 만들고, 자본이 기업의 성장을 지속적으로 지원하며, 지역이 구체적인 편익과 산업역량을 얻는다면 전환을 지지할 주체와 이해관계의 단단한 기반이 형성됩니다.

AI 호황이 만들어낼 추가 재정을 에너지 전환에 투입한다는 것은 전선과 발전소를 더 짓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전력망을 새로운 산업의 기반으로 바꾸고, 전문성을 갖춘 자본이 그 산업의 기업과 함께 성장하며, 전환의 물리적 부담을 감당하는 지역에 기업과 자산이 축적되게 하는 일입니다. 호황이 만든 재정적 여유를 자본과 산업, 지역을 바꾸는 힘으로 전환하는 것. 지금 시작해야 하는 에너지 대전환의 모습입니다. 임팩트 자본의 역할을 주목합니다.

 

* 본 에세이는 필자 개인의 분석과 관점이며, 소풍벤처스의 공식 투자 의견이 아닙니다.

필자 박윤중은 알버타대학교 박사후연구원이자 소풍랩 리서치펠로우로서, 기술 거버넌스와 임팩트투자, 기후테크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대전환의 시대, 자본과 제도가 만나는 접점의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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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풍벤처스

2026.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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