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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ight] 기후테크는 모두를 위한 기술이 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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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테크는 모두를 위한 기술이 될 수 있을까요

에너지 전환의 비용을 설계하는 자본

 

글 박윤중 (소풍랩 리서치펠로우) | 기획·감수 한상엽 (소풍벤처스 대표)

 

6월 4일, 서울과 파리에서 서로 다른 언어로 같은 질문이 제기되었습니다. 서울의 기후·에너지 정책 패키지는 한국의 전환 병목이 발전소 증설에서 계통 운영, 저장, 요금 구조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같은 날 파리에서 공개된 글로벌 정의 보고서는 그 병목이 결국 분배의 문제라는 점을 수치로 보여주었습니다. 여기에서 임팩트 투자자에게 중요한 질문은 단순히 “어떤 기술이 더 친환경적인가”가 아닙니다. “어떤 전환 모델이 비용과 편익을 설계해 정책 백래시를 견디고, 나아가 사회통합을 이끌어낼 수 있는가”입니다.

서울의 발표부터 보겠습니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정부 출범 이후 지난 1년 동안의 성과를 발표했습니다. 각 부처에 흩어져 있던 기후, 환경과 에너지 정책을 단일 부처로 통합한 거버넌스 실험이 내놓은 성적표입니다. 이 성적표의 무게중심은 발전소 증설이 아니라 계통(Grid), 즉, 전기를 제때 연결하고 저장하며 유연하게 통제하는 역량에 있습니다. 태양광 이격거리 규정 개선, 재생에너지 공급인증서 (REC) 현물시장 폐지, 발전량 의무를 설비용량 의무로 바꾸는 재생에너지 공급의무화제도 (RPS) 개편, 시간대별 요금제까지, 한국의 에너지 전환은 '더 많이 짓는' 단계에서 '제대로 흐르게 하는' 단계로 진입하고 있습니다.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은 기후위기 극복과 에너지 대전환을 묶는 정책 패키지를 강조했습니다. 클릭하면 유튜브 링크로 넘어갑니다.

 

그런데 이 성적표에는 아직 명확한 답이 비어 있는 문항이 있습니다. 이 전환의 비용은 누가, 어떤 순서로 부담해야 할까요?

계통이 전환의 핵심이라는 말은, 서해안 해저송전망과 저장설비 확충 등 국가전력망의 분산형 에너지 전환에 청구될 막대한 비용이 언젠가 누군가의 고지서로 돌아온다는 뜻입니다. 흥미롭게도,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정면으로 다룬 보고서가, 같은 날 파리에서 발표되었습니다.

 

같은 날, 파리에서: 전환의 '필요조건'으로서의 분배

6월 4일 파리에서 열린 세계 불평등 회의(World Inequality Conference)에서 세계불평등연구소(World Inequality Lab)가 <글로벌 정의 보고서> (Global Justice Report)를 공개했습니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 뤼카 샹셀 등 45명의 연구자가 참여한 이 보고서는 2026년부터 2100년까지의 인류 발전 전환 경로를 최초로 정량화한 청사진입니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는 <글로벌 정의 보고서>를 통해 평등과 번영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과제라고 강조합니다. 클릭하면 유튜브 링크로 넘어갑니다.

 

요지는 명확합니다. 에너지 시스템의 신속한 탈탄소화, '충분성(sufficiency)'으로의 라이프 스타일 전환, 그리고 국가 간·국가 내 불평등의 획기적인 감소입니다. 수치로 옮기면, 모든 나라의 1인당 월평균 국민 소득을 5,000유로 수준으로 끌어올려 현재 16배에 달하는 세계 소득 격차를 해소하고, 연간 노동시간은 약 2,100시간에서 1,000시간으로 줄이며, 글로벌 하위 50%의 부의 비중을 2%에서 30%로 늘리고, 기온 상승은 기준 시나리오의 4°C 보다 낮은 1.8°C에서 멈추게 만들자는 것입니다. 이 담대한 계획의 재원은 억만장자에게 연 20%까지 이르는 글로벌 부유세로 조성되는 글로벌 정의 기금입니다. 글로벌 정의 기금은 에너지 전환·교육·의료 지출을 끌어올리는 투자를 적극적으로 지원합니다. 소비재가 아니라 사람에게 쓰는 돈이 경제의 중심이 되는, 저탄소 서비스 경제로의 재구조화가 핵심입니다.

2100년을 그린 청사진을 또 하나의 유토피아 문서로 읽고 덮는 것은 쉬운 일입니다. 글로벌 부유세에 당장 합의할 국가나 국제기구는 지금 당장 보이지도 않고요. 그러나 이 보고서의 진짜 기여는 74년 뒤의 그림이 아니라 하나의 강력한 명제에 있습니다. ”불평등 축소는 탈탄소화의 도덕적 당위가 아니라 '필요조건'”이라는 것입니다.

<21세기 자본>의 저자 피케티는 보고서 발표에서 불평등과 지구 거주 가능성을 동시에 다루지 않으면, 정부들이 프랑스의 '노란 조끼' 시위 (부유층보다 노동자와 중산층에 더 큰 부담을 지운 탄소세가 부른 반발) 같은 실수를 반복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비용 전환이 취약계층에 집중될 때 발생하는 정치적 역풍은 기후 정책을 근본적으로 후퇴시킵니다. 기후 정책의 성패가 기후과학이 아닌 '분배의 정치'에서 결정된다는 핵심논지를, 보고서는 74년 치 수치 모델을 통해 강력히 주장합니다.

<글로벌 정의 보고서>는 기온 상승을 2°C 이하로 억제하려면 사회경제적 충분성 (노동시간 단축, 비물질적 소비로의 전환, 식습관 변화)과 에너지 시스템 전환이 모두 필수적이며 서로를 보완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림은 탄소 배출 감축의 44%를 사회경제적 충분성 전환이, 56%를 에너지 시스템 전환을 통해 달성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노란 조끼는 일회성 사건이 아니라 오늘날 전환기의 현대사회가 경험하고 있는 역사적 패턴의 원형으로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분배 설계 없는 기후 정책은 정치적 역풍에 취약합니다. 전환 비용이 오르면 가장 먼저 타격받는 것은 통근 거리가 길고 주택 단열이 취약하며 소비에서 에너지 비중이 높은 계층입니다. 이들이 정치적 반대 동맹으로 조직되는 순간 정책은 후퇴하고, 후퇴한 정책은 역설적으로 더 급진적인 정책을 요구하며, 더 급진적인 정책은 더 큰 반발을 부릅니다. 2020년대의 유럽은 이 역사적 과정을 생생히 보여줍니다. 농민 시위에서 내연기관 규제 후퇴까지, 우리는 이 악순환을 실시간으로 보고 있습니다. 보고서는 이 악순환의 굴레를 끊는 유일한 길이 전환 비용의 누진적 배분이라고 강조합니다.

 

파리의 렌즈로 서울의 패키지를 다시 읽다

이 렌즈를 끼고 기후에너지환경부의 1년을 다시 보면, 전혀 다른 층위의 역학을 읽을 수 있습니다. 한국의 전환 설계 안에도 분배의 장치들이 이미 맹아 형태로 자리 잡고 있는 것입니다.

전력망 우선접속을 보장받는 '햇빛소득마을'은 재생에너지 수익을 입지 지역 주민의 소득으로 환류시키는 제도적 장치입니다. 전환의 과실을 자산이 아니라 사람에게 배분하는, <글로벌 정의 보고서>가 강조하는 '에너지 소득'의 한국적 원형입니다. 지역별 차등 전기요금제는 전기를 생산하는 지방과 소비하는 수도권 사이의 분배적 정의를 처음으로 가격 메커니즘에 반영하는 정책적 실험으로 논의되고 있으며, 올해 2조 9,000억 원으로 역대 최대 규모로 조성된 기후대응기금은 배출권 유상할당 수익을 재원으로 확대될 예정인데, 탄소에서 거둬 전환에 쓴다는 구조만 놓고 보면 글로벌 정의 기금의 국내 축소판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기후시민회의의 출범은, 글로벌 정의 보고서의 문장을 빌리면, '위기와 재앙'이 아닌 '참여와 숙의'의 경로를 제도화하려는 시도입니다.

하지만 이 논의를 한 단계 더 밀어붙여 보겠습니다. 이 제도적 장치들은 과연 전환 설계의 중심일까요? 아니면 부록에 불과할까요?

전력 전환의 비용이 요금으로 이전될 경우, 그 부담은 소득에 자동으로 연동되지 않습니다. 보완 장치가 없다면, 에너지 소비 비중이 높은 가계와 지역에 더 크게 체감될 것입니다. 2040년까지 단계적으로 문을 닫는 석탄발전소 40기는 지역의 고용과 경제와 묶여 있습니다. 프랑스의 노란 조끼가 중산층에 매겨진 탄소세에서 점화됐다면, 전기요금을 둘러싼 정치적 갈등은 한국 맥락의 불씨가 될 잠재력이 높습니다. 기후에너지환경부의 지난 1년이 보급과 계통의 제도를 정비하는 시간이었다면, 다음 1년의 진정한 시험대는 비용 부담의 설계가 될 것입니다. <글로벌 정의 보고서>가 '필요조건'이라고 부른 바로 그것입니다.

공정하게 보태자면, <글로벌 정의 보고서>에도 빈칸이 있습니다. 보고서 스스로 인정하듯 이 정책은 극심한 정치적 반대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으며, 그 반대는 초부유층 뿐 아니라, 이 정책의 직간접적인 영향으로 금전적 손해를 볼 가능성이 높은 부유한 국가의 10-20%의 인구로부터도 올 것입니다.  그리고 이들은 선거의 향배를 가르는 유권자층입니다. 발표 나흘 만에 나온 런던정경대학 객원교수 던컨 그린의 비평 ( "훌륭한 수치, 빈약한 정치") 이 핵심을 짚습니다. 계산은 대체로 맞지만, 그 계산을 집행할 정치적 주체에 대한 이론은 얇다는 평입니다. 또한, 기후가 계급 문제이기 이전에 정체성 전선이 되어버린 각국의 문화적 분열은 글로벌 보고서의 예측 모델 바깥에 있는 것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접점: 투자자가 설 자리

그렇다면 2026년 6월 기후에너지환경부의 정책 패키지와 파리의 글로벌 정의 보고서가 겹쳐지는 영역, 즉 계통의 재설계와 분배의 설계가 만나는 곳에서 임팩트 투자자는 무엇을 주목해야 할까요.

 

계통: 유연한 운영이 가치를 만든다.

재생에너지 공급의무화제도 (RPS)를 대체하는 장기고정가격 입찰, 시간대별 요금제, 분산특구의 공통점은 전기의 '시간과 장소'에 처음으로 가격을, 가치를 매긴다는 것에 있습니다. 지금까지 전기는 대체로 “얼마나 생산했는가”의 문제로 다뤄졌지만, 재생에너지 비중이 높아질수록 더 중요한 질문은 “언제, 어디에서, 얼마나 예측 가능하게 쓸 수 있는가”가 됩니다. 즉 전력의 가치는 발전량만이 아니라 시간대, 입지, 수요 반응, 저장 가능성, 계통 혼잡을 함께 반영하게 됩니다.

가격이 매겨진 곳에 시장이 생기고, 시장이 생기면 효율적 운영을 위한 소프트웨어가 필요해집니다. 흩어진 재생에너지, 배터리, 수요 반응 자원을 묶어 하나의 예측 가능한 자원처럼 운영하는 기술이 바로 이 지점에서 중요해집니다. 가상발전소(VPP)를 개발하고 풍력 발전량 예측 기술로 TIPS에 선정된 식스티헤르츠가 정확히 이곳에 서 있습니다. 분산된 재생에너지를 예측 가능한 자원으로 만드는 일은, 계통 중심 전환 관점에서는 발전소를 짓는 일만큼 본질적인 인프라가 될 수 있습니다.

다만 이 시장의 역풍도 명확합니다. 유연성 시장은 기술만으로 열리지 않습니다. 장기입찰시장의 설계, 시간대별 요금제의 단계적 시행, 분산자원의 시장 참여 규칙, 계통 접속과 정산 방식이 실제로 움직여야 시장이 열립니다. 따라서 이 영역의 평가는 얼마나 “기술이 좋은가”에서 끝나면 안 됩니다. 제도가 얼마나 빠르게 이행되는가, 그 과정에서 비용 부담이 누구에게 전가되는가, 그리고 그 부담이 정치적 반발로 조직될 수 있는가까지 보아야 합니다.

 

분배: 에너지 복지가 비즈니스 모델이 된다.

햇빛소득마을이 보여주듯, 한국 전환 설계의 분배 장치들은 '수익의 환류'라는 형태를 띱니다. 재생에너지 설비가 외부 사업자의 수익원으로만 남는 것이 아니라, 지역 주민, 농가, 에너지 취약계층에게 반복적인 소득이나 비용 절감으로 돌아가도록 설계될 때 전환은 더 오래 버틸 수 있습니다. 여기서 분배는 사후 보상이 아니라 제도와 비즈니스 모델의 핵심 설계 원리가 됩니다.

이 구조를 민간에서 먼저 구현한 사례가 있습니다. 난방약자와 기후투자자가 상생하는 소득 공유형 히트펌프 구독 모델을 전국으로 확대하겠다는 모닥불에너지입니다. 이 모델의 핵심은 열에너지 탈탄소화의 초기 비용 장벽을 구독과 소득 공유 구조로 낮추는 데 있습니다. 다시 말해 전환에서 가장 먼저 배제될 수 있는 계층을 가장 먼저 포함시키는 설계입니다. 파리의 글로벌 정의 보고서의 언어로 옮기면, 이는 분배를 부가적 고려가 아니라 탈탄소 모델의 작동 원리로 삼는 접근입니다.

노란 조끼의 교훈을 뒤집으면 이 지점이 더 분명해집니다. 비용 부담을 설명하지 못하고, 수혜 집단을 만들지 못한 기후정책은 백래시에 취약합니다. 반대로 비용 절감, 소득 환류, 지역 일자리, 에너지 접근성 개선처럼 수혜가 구체적으로 경험되는 모델은 정책 변화 속에서도 스스로를 방어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분배 설계를 내장한 비즈니스 모델은 단지 더 윤리적인 모델이 아니라, 정치적으로 더 오래 살아남을 수 있는 모델일 수 있습니다.

 

원칙: 정책 존속성이 실사 항목이다.

기후·에너지 전환 영역의 수익 모델은 기술 자체만이 아니라 제도 위에 서 있습니다. 전력망 요금제, 재생에너지 입찰시장, 탄소가격, 보조금, 공공기금, 세액공제, 장기 전력구매계약이 모두 제도와 밀접한 관계 속에 작동합니다. 따라서 핵심 질문은 단순히 “이 제도가 친환경적인가”가 아니라, 이 제도는 “누구에게 비용을 지우며, 그 비용을 부담하는 집단은 정치적으로 조직될 수 있는가”를 묻는 것입니다.

예컨대 전기요금 상승이 가계에 직접 전가되는 모델, 산업 전력 소비자의 비용 부담을 높이는 모델, 세금 기반 보조금에 의존하는 모델은 각각 다른 정치적 반대 연합을 만들 것입니다. 반대로 에너지 비용 절감, 지역 일자리, 농가 수익, 산업 경쟁력, 전력 안정성처럼 명확한 수혜 집단을 먼저 만들어내는 제도는 정권 교체 이후에도 스스로를 방어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 점에서 ESG 체크리스트만으로는 부족할 수 있습니다. 필요한 것은 환경적 타당성 평가를 넘어선, 정치경제적 내구성 평가입니다. 같은 기후테크 섹터 안에서도 정권 교체, 요금 인상 논란, 재정 긴축, 지역 반발에 취약한 자산과, 이미 조직된 수혜 집단을 통해 제도적 방어력을 확보한 자산은 전혀 다른 리스크를 질 수 있습니다. 불평등과 기후의 결합은 바로 이 실사에 이론적 뼈대를 제공합니다. 기후정책은 비용과 편익을 불균등하게 배분하고, 그 불균등한 배분은 다시 정책의 지속 가능성을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열린 결론

6월 4일의 두 발표를 겹쳐 놓으면 흥미로운 대칭이 보입니다. 파리의 보고서는 분배의 산수는 완성했지만 그것을 집행할 정치가 비어 있고, 서울의 정책발표는 집행할 제도는 축적되고 있지만 분배의 설계가 아직 부록에 머물러 있습니다. 어느 쪽도 완성형이 아니며, 바로 그렇기 때문에 서로가 서로의 결핍을 비춥니다.

연 노동시간이 OECD 최상위권인 한국에서 주 4.5일제 논쟁과 전기요금 정치와 탄소중립 로드맵은 별개의 트랙처럼 다뤄집니다. 그러나 불평등과 기후변화를 묶어서 다루는 보고서의 프레임을 따라가면, 이 셋은 한 사회의 부의 분배를 재설계하는 문제로 읽을 수 있습니다. 한 사회가 생산성의 과실을 어디로 보낼 것인가, 비용을 누구에게 지울 것인가, 그리고 전환의 편익을 누구에게 먼저 돌려줄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1930년,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우리 손자손녀 세대의 경제적 가능성>에서 기술진보와 자본축적이 계속된다면 100년 뒤 선진국은 경제적 생존 문제를 상당히 해결할 것이며, 인류의 진짜 문제는 더 이상 ‘어떻게 먹고살 것인가’가 아니라 ‘풍요와 여가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가 될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2030년의 인류는 주 15시간의 의미 있는 노동만으로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2030년을 4년 앞둔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그의 예언은 절반만 맞았습니다. 생산성은 그의 예측대로 향상되었지만, 그 과실이 모두에게 더 많은 여가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과실의 상당 부분은 자산, 소득, 기술, 에너지 접근성의 격차 속에서 불균등하게 배분되었습니다. 2100년까지 다음 74년이 어느 방향으로 갈지는 결국 그 과실을 어디로 보낼지에 대한 정치의 문제입니다.

마침 한국은 신임 국무총리 임명을 앞두고 있습니다. 네이버 대표이사와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을 지낸 한성숙 후보자에게 청와대가 건넨 주문은 ‘AI 대전환’과 ‘국민 모두의 성장’이었습니다. 후보자가 창업, 벤처, 기술혁신의 언어에 익숙하다는 점은 기후테크 생태계에도 중요한 신호입니다. 그러나 정부의 과제는 단순히 더 많은 기후테크 기업을 키우는 데서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더 어려운 과제는 기후테크가 전기요금, 지역경제, 난방비, 산업 경쟁력의 균열을 줄이는 사회통합의 장치가 되도록 시장과 제도를 함께 설계하는 일입니다.

그 설계의 정치는 전기요금 고지서 위에서 먼저 실험대에 오를 가능성이 높습니다. 누가 더 내고, 누가 덜 내며, 누가 절감하고, 누가 소득을 더 얻을까요. 얻어야 할까요.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하는 전환은 오래 버틸 수 없습니다. 반대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비즈니스 모델 안에 담아내는 자본은, 제도가 완성되기 전부터 전환의 정치적 기반을 만들 수 있습니다. 아직 시장으로 인정받지 못한 필요를 먼저 발견하고, 아직 제도로 굳어지지 않은 수혜 집단을 먼저 포착하는 것, 그것이 임팩트 투자가 지금까지 해왔던 일이 아니었을까요.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할 것입니다.

 

* 본 에세이는 필자 개인의 분석과 관점이며, 소풍벤처스의 공식 투자 의견이 아닙니다.

 

필자 박윤중은 알버타대학교 박사후연구원이자 소풍랩 리서치펠로우로서, 기술 거버넌스와 임팩트투자, 기후테크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대전환의 시대, 자본과 제도가 만나는 접점의 이야기를 격주로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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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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