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POONG VENTURES' SPECIAL BRIEFING
열 장면으로 정리한 2026 기후테크 스타트업 서밋
안녕하세요, 소풍벤처스 리서치펠로우 박윤중입니다. 이번 호는 정기 브리핑 대신 9월 10일부터 12일까지 제주에서 열린 2026 기후테크 스타트업 서밋을 주목할 만한 열 장면으로 묶은 특별호입니다. 올해로 다섯번째인 이번 서밋은 소풍벤처스와 카카오임팩트가 함께 주최했고, 올해 슬로건은 'Climate Runs on AI, AI Runs on Power', 기후를 움직이는 AI와 AI를 움직이는 에너지였습니다.
서밋 첫날은 '왜 지금 기후와 AI를 같이 봐야 하는가', 둘째 날은 '각자의 자리에서 무엇이 실행되고 있고 무엇이 병목인가', 마지막 날은 '그래서 다음은 무엇인가'로 설계되었습니다. 브리핑도 그 순서를 따라, 무엇이 논점으로 던져졌고, 어디까지 답이 나왔고, 무엇이 과제로 남았는지를 전합니다.
이번 호 한눈에 보기
▪ 장면 1 · AI 전력 수요를 뒷받침한 기후테크의 성장과 가능성에 주목합니다
▪ 장면 2 · 한국 기후테크 생태계를 위한 통계가 필요합니다
▪ 장면 3 · 규제자에서 시장 형성자로, 정부의 역할을 다시 묻습니다
▪ 장면 4 · 기후테크의 성장은 기술이 아니라 사회 시스템에 달려 있습니다
▪ 장면 5 · 무정전이라는 KPI를 넘어설 필요가 있습니다
▪ 장면 6 · 스타트업은 한국 기후테크의 경계를 확장하고 있습니다
▪ 장면 7 · 지금 이 시각, 제주의 재생에너지 비중은 60%입니다
▪ 장면 8 · 에너지 전환을 시장으로 만들기 위한 조건이 있습니다
▪ 장면 9 · 기후테크 생태계와 함께 성장한 서밋 5주년
▪ 장면 10 · 한국기후위크로 이어지는 다음 만남
■ 장면 1 — AI 전력 수요를 뒷받침한 기후테크의 성장과 가능성에 주목합니다
첫날 그랜드 키노트에서 전해원 KAIST 녹색성장지속가능대학원 부교수는 '기후를 움직이는 AI'를, 하정우 국가AI전략위원회 상근부위원장은 'AI를 움직이는 에너지'를 맡아 발표한 뒤 한 무대에 마주 앉았습니다. 구도 자체가 메시지였습니다.
전해원 교수의 이야기는 기후 과학의 병목을 해결하는 AI의 활용 가능성으로 시작했습니다. IPCC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의 평가보고서 한 편을 작성하는 데 500여명의 학자들이 보통 7년을 소모한다고 합니다. 게다가 물리 지구모델이 너무 무거워 기존에는 한 사이클에 시나리오를 다섯 개밖에 돌리지 못했던 것이죠. 전해원 교수팀은 생성형 AI를 활용해 기존의 한계를 뛰어넘는 100만 개의 감축 경로를 만들고, 기존 시나리오가 받아 온 비판까지 반영해 '지속가능하면서 실현 가능한' 일곱 개의 시나리오를 남겼습니다.
시나리오는 수많은 결정의 순간들을 포함합니다. 데이터센터를 10배·20배로 늘리고, 필요한 전기 발전원을 가스와 석탄으로 채우면 그것만으로 1.5도 탄소 목표를 전부 소진할 수 있고, 반대로 청정에너지로 공급하면 탄소 배출을 4분의 1에서 10분의 1로 줄일 수 있습니다. 전 교수는 어떤 시나리오가 실현되는지는 결국 "의지의 문제"라고 강조했습니다.
하정우 부위원장은 반대 방향에서 같은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고성능 메모리와 데이터가 충분히 있어도 "전력이 부족하면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것입니다. 하 부위원장은 전력은 충분해야 하고, 24시간 안정적이어야 하고, 빨리 확보되어야 하고, 클린해야 한다는 에너지 전환의 대원칙을 제시했습니다. 특히 클린 에너지를 활용하지 않으면 기후 장벽만이 아니라 탄소 에너지의 생산과 묶여 있는 무역 장벽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공유했습니다. 그래서 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는 수요 재전망과 수요 반응, 분산된 전력망 강화가 들어가야 하고, 그 과정에서 배터리와 가상발전소 같은 산업이 성장 동력이 된다는 것이 하 부위원장의 정리였습니다. 다만 당장의 급증한 전력 수요를 감당하기 위한 단기적인 가스 활용의 필요성은 인정했습니다.
이어진 특별 기조 대담에서 사회를 맡은 한상엽 소풍벤처스 대표는 두 키노트 스피커에게 AI의 전력 수요를 떠받치면서 부상한 기후테크의 성장세가 지속가능한지, 이 방향성이 바람직한지를 물었습니다. 하 부위원장의 답은 실용주의적이었습니다. 방향성을 따지기보다, 탈탄소 청정에너지의 중요성이 드러난 역사적인 기회를 살려 에너지 전환의 근간을 만드는 데 집중하자는 제안이었습니다.
한 대표는 패널뿐 아니라 서밋의 모든 참가자에게 던지는 질문으로 대담을 마무리했습니다. 기후테크 생태계는 AI가 앞에 서고 에너지가 뒤를 받치는 구도에 편승하여 확장할 것인가,기후테크를 AI와 동등한 수준의 정책적 어젠다로 끌어올려야 하는가 (할 수 있는가), 또는 경쟁과 안보라는 현재의 프레임을 넘어선 새로운 생태계 성장의 내러티브를 제안할 수 있을 것인가. 지속가능성 논의의 출발점이 된 『성장의 한계』(1972)가 경제학자, 과학자, 관료, 사업가 등 경계를 넘나든 다양한 분야 전문가들로 이루어진 로마클럽의 치열한 토론에서 나왔다는 역사적 사실과, 그 구성을 꼭 닮은 제주 기후서밋의 의의를 강조하면서요.
■ 장면 2 — 한국 기후테크 생태계를 위한 통계가 필요합니다
기후서밋 첫날 2026년 기후테크 현황을 짚어보는 인사이트 세션에서 한상엽 대표는 기후분야 통계의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한국의 기후테크 통계가 없습니다. 그래서 올해 기후테크 분야가 좋아졌다 나빠졌다 얘기할 근거가 아직은 부족합니다"라구요. 그래서 글로벌 통계를 기준으로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데, 한 대표에 따르면 글로벌 기후테크 투자 절대액은 50% 넘게 늘어난 반면 성사된 딜 건수는 5년 최저를 기록했습니다. 기후테크만은 아니지만, 국내 투자 섹터 전반의 상반기 벤처투자 금액은 역대 최고를 기록한 반면, 건수는 5년 전 수준으로 회귀하는, 동기화된 흐름을 보이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한 대표는 "규모를 못 만들면 투자 못 받는 시대"라며, 지금 같은 상황이 지속된다면 기후테크 분야 투자 자체가 위축될 것을 우려했습니다.
김범수 기후에너지환경부 기후에너지기술과장은 통계 이전의 문제를 짚었습니다. 기후테크의 법적 분류 자체가 없고, 올해 6월 이후 잇따라 발의된 기후테크 육성 특별법안들이 처음으로 분류를 시도하고 있다는 설명입니다. 김 과장은 "공통 기준을 찾으려다 보면 오히려 지원할 시기를 놓칠 수 있다"는 판단에서, 법으로 기본 체계(기후가치평가, 전담기관)를 만들고 시행령에서 구체적으로 빈칸을 메워가겠다는 방향성을 공유했습니다.
■ 장면 3 — 규제자에서 시장 형성자로, 정부의 역할을 다시 묻습니다
개회식에서 정선화 기후에너지환경부 녹색전환정책관은 환경을 규제의 대상으로만 보던 관점에서 벗어나, 정책이 산업과 국민의 삶을 어떻게 바꾸는지 시험하는 부처로 기후부를 소개했습니다. 지현영 서울대 환경에너지법정책센터 변호사는 1961년 미국의 달 착륙 프로젝트가 조직과 예산과 공공조달을 정렬해 2만 개 넘는 기업과 대학의 생태계를 만들었듯, 정부의 역할은 시장 실패를 고치는 데 그치지 않고 "공공 미션을 제시하고 시장의 방향 자체를 형성하는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정부는 한국형 녹색대전환(K-GX) 전략을 10월 7일 발표할 예정이며, 청정에너지 공급망과 주력산업 탈탄소, 히트펌프 보급 등을 묶은 '10대 K-GX 시그니처 프로젝트'가 담길 것이라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지 변호사는 이와 함께 논의되는 제도를 네 갈래로 정리했습니다. 기존 배출산업의 설비 전환을 돕는 탄소차액계약(정부가 장기간 탄소가격의 차액을 보전해 초기 투자 위험을 나눠 지는 제도), 수요 확산 보조와 세액공제, 업종별 이행 협약을 담은 산업GX조직법, 그리고 비어 있는 구간을 지원하는 기후테크법입니다. 현재까지의 정책 수요를 검토하면서 지 변호사는 정부가 단순한 지원을 넘어서 녹색산업을 기획하고 기업이 협력했을 때 확실한 인센티브를 주는 큰 그림을 그릴 것을 주문했습니다.
■ 장면 4 — 기후테크의 성장은 기술이 아니라 사회 시스템에 달려 있습니다
둘째 날 첫 세션은 뉴에너지넥서스의 앤드류 창 대표가 아시아 기후테크 자본시장 현황을 공유했습니다. 아시아 전력 수요는 20년간 4배가 됐고, 경제성이 지속가능성을 이깁니다. 필리핀은 GDP가 싱가포르의 10분의 1인데 전기료는 더 비싸고, 태양광은 킬로와트시당 9센트입니다. 지난 3월 이란 전쟁 때 방콕 신문 1면은 전부 에너지 안보였습니다. 반면 파키스탄의 태양광 붐은 정부가 아니라 시민이 주도한 것이 특징적입니다.
IEA 기준으로 2030년까지 필요한 감축의 80%가 이미 있는 기술로 가능하다는 대목에서 그는 기후테크 분야의 성장과 발전은 "기술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 문제"라고 했고, 성공하는 정책의 첫 번째 조건으로 국가 맞춤형 혁신 정책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국가마다 시스템이 다르다는 것을 인식하고 자원화하는 것으로부터 기후테크 정책 및 비즈니스 모델 혁신이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 장면 5 — 무정전이라는 KPI를 넘어설 필요가 있습니다
한상엽 대표는 첫날 한전과 발전 자회사 통합을 두고 KPI를 어떻게 세팅할 것인가가 핵심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정전이 일어나지 않는 것은 물론 중요한 목표이지만, "어떻게 생산했나, 누가 생산했나, 이전보다 얼마나 저비용으로 생산했나, 거기 얼마나 많은 기업과 이해관계자가 참여해 생산했나"를 KPI로 고려하지 않으면 스타트업이 들어갈 자리가 좁아진다는 이야기입니다.
이종민 한전기술지주 대표이사도 같은 자리를 짚었습니다. 무정전이 최우선인 한전 같은 조직에서 신기술은 만약의 실패도 부담스러운 리스크로 간주될 가능성도 있다는 것입니다. 참여 기업과 이해관계자의 수를 KPI에 포함시킨다면, 신기술은 자산으로 분류될 수 있습니다. 2035년까지 에너지 유니콘 10개 발굴이 목표라는 이 대표이사의 처방은 한전이 보유한 특허 개방과 나주 실증단지, 그리고 적극적인 통합이라는 세 가지 방향으로 정리됩니다. 특히 "발전에서 송배전, 관리, 예측까지 하나로 돼야 산업이 된다"고 강조합니다.
이 질문은 곧 현실의 질문이 됩니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9월 초 발전 5개사를 하나로 묶는 통합 방안을 발전사 노사와 논의했고, 보도에 따르면 통합 법인은 약 53GW의 설비를 갖고 재생에너지·정의로운전환 본부를 두는 구조로 검토되고 있습니다. 정부는 연내 발전공기업 구조개편안을 마련할 계획입니다. 통합 법인이 무정전 외에 무엇을 성과로 측정하는지가 스타트업에게 열리는 기회의 폭을 결정할 수 있습니다.
■ 장면 6 — 스타트업은 한국 기후테크의 경계를 확장하고 있습니다
기후테크 스타트업 10개 팀의 피칭이 있었던 'The Ones Who Run It'은 참가자들이 가장 좋았다고 꼽은 세션이었습니다. 열에너지, 전력망, 배터리, 핵심광물, 자원순환까지 열 팀은 기후테크의 경계가 어디까지 넓어졌는지를 보여줬습니다.
• 모닥불에너지 · 이창섭 대표이사. "내연기관차는 전기차로 이렇게 빠르게 변하는데 왜 보일러는 여전히 화석연료일까." 화석연료 보일러를 히트펌프로 바꾸는 초기 설치비를 구독 모델로 풀고, 설비 투자비는 프로젝트별로 조달하며 금융기관과 보증보험으로 회수 위험을 줄입니다.
• 알엑스 · 김일환 원자력 개발팀장. 산업용 열 공급용 소형모듈원자로(SMR)를 개발하면서 설계·인허가 문서 작업에 AI 에이전트를 씁니다. 열 공급용으로 먼저 상용화한 뒤 발전으로 확장할 계획입니다.
• 나노브리지 · 여창수 연구소장. 그래핀과 탄소나노소재로 AI 데이터센터용 고성능 냉각수를 만듭니다. 액체냉각 시장에서 시작해 자동차·항공우주로 넓힙니다.
• 퀀텀하이텍 · 안현주 대표이사. 전기차 300대 이상의 실주행 데이터로 배터리의 건강 상태와 남은 가치를 판정하는 '배터리 MRI'입니다. 중고 전기차 인증·보험·사용후 배터리 시장으로 연결합니다.
• 홀트에너지 · 김흥섭 대표이사. 바이오가스와 폐플라스틱 열분해에서 버려지는 폐가스를 저전력으로 청정수소로 바꿉니다. 실증을 마치고 스케일업을 준비합니다.
• 알트에코 · 곽금옥 대표이사. 폐배터리가 실제 발생하는 파키스탄에 공장을 세워 소형 폐배터리를 전처리하고, AI 이미지 인식으로 선별해 글로벌 제련사에 공급합니다.
• 파이온일렉트릭 · 강지성 대표이사. 인버터가 직접 전압과 주파수를 잡는 그리드 포밍 기술로 재생에너지 확대와 AI 데이터센터의 급격한 부하 변화가 만드는 전력망 불안정을 해결합니다.
• BANiQL · Eric Januar CEO. 니켈·코발트를 고온·고압 대신 100도 이하 대기압에서 추출·정제하는 공정입니다. 인도네시아에 데모 시설을 두고 한국·일본·미국을 겨냥합니다.
• 디오리진 · 심건우 대표. 대기 중 CO2를 흡수하는 시아노박테리아로 토양과 바다에서 분해되는 바이오소재를 만드는 학생 창업팀입니다. 농업용 코팅에서 시작합니다.
• 기가에떼 · 박훈진 상무. 재생에너지와 산업 폐열을 저장했다 쓰는 열배터리입니다. 몽골에서 난방 실증 중이고, 제철·화학 공장 폐열과 LNG 터미널 냉열로 확장합니다.
■ 장면 7 — 지금 이 시각, 제주의 재생에너지 비중은 60%입니다
둘째 날 오후 에너지 전환 세션에서 진행을 맡은 류준우 그리드위즈 사장은 전력거래소 API를 열어 그 시각 제주 재생에너지 비중을 무대 화면에 띄웠습니다. 53.88%, 피크 시간대 60.18%, 그리고 출력을 줄이는 중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처럼 제주는 한국 사회 청정에너지 전환의 미래와 병목을 가장 먼저 경험하는 곳입니다.
같은 세션에서 2012년 수요자원 시장을 설계한 윤혁준 한국전력거래소 팀장은 "전력시장은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설계로 만들어진다"고 강조했습니다. 온실가스 배출의 정점은 낮이 아니라 새벽과 밤이고, 수십 년 동안 원전과 석탄을 돌리기 위해 야간 요금을 낮춰 산업 수요를 밤으로 옮겨 왔는데, 이제는 낮으로 옮기는 노력을 병행해야 재생에너지와 저장장치 투자가 함께 삽니다.
재생에너지가 늘어난 뒤에 무엇이 막히는지는 김형중 인하대 초빙교수가 보여줬습니다. 2024년 시행된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은 지역에서 만든 전기를 지역에서 직접 사고팔 수 있게 하는 법이고, 특화지역은 그 실험을 허용한 구역입니다. 그런데 1기 특화지역 일곱 곳 가운데 직접 거래가 실제로 이뤄지는 곳은 한 곳뿐입니다. 이유는 세 가지 규칙입니다. 첫째, 지역 안의 배전망으로만 거래하는데도 장거리 송전망 이용요금을 물려 가격 이점이 사라집니다. 둘째, 사업자가 고객 수요의 70%를 스스로 책임지고 공급해야 해서 저장장치를 많이 깔아야 하고 경제성이 떨어집니다. 셋째, 소규모 소비자와 가상발전소 사업자가 특화지역 안에서 자유롭게 거래하지 못합니다. 즉, 재생에너지는 이미 충분히 들어왔고, 병목은 발전이 아니라 그 전기를 사고파는 규칙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예원 카카오 수석 매니저는 24시간 서비스와 변동성 재생에너지 사이의 간극을 "누가 얼마나 확보하느냐보다 어떻게 언제 어디서 확보할 것인가"로 정리했습니다.
■ 장면 8 — 에너지 전환을 시장으로 만들기 위한 조건이 있습니다
마지막 날 제주도와 공동 기획한 특별 세션에서 박윤중 소풍벤처스 리서치펠로우는 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 논의과정으로부터 50GW가 넘는 것으로 추정되는 어마어마한 신규 전기 수요가 바로 기후테크 시장의 활성화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지적하며, 누구에게 기회가 돌아가는가를 물었습니다. 그러면서 앞으로 예상되는 에너지 전환 과정에 있어 청정에너지 생산자에 대한 분배구조의 설계, 혁신적인 스타트업의 진입을 위한 개방적인 제도, 그리고 혁신이 자라나고 이윤이 분배되는 장소로서의 지역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이 셋의 교차가 선명히 드러나는 지역이 제주이기도 합니다.
오경섭 제주특별자치도 분산에너지과장은 제주의 재생에너지 전환 성과와 동시에 병목에 대한 경험을 공유했습니다. 제주는 재생에너지 전기가 남아돌아 발전을 강제로 줄이는 출력제어가 2015년 3회에서 2023년 181회로 늘었고, 제조업이 없어 남는 전기를 써 줄 곳이 없습니다. 그래서 도가 히트펌프 보급을 추진하는 진짜 이유는 난방이 아니라 새 수요를 만드는 것입니다. 버려질 재생에너지를 도민의 난방비 절감으로 바꾸고, 그 경험을 전국으로 확산하겠다는 것입니다. 제주는 이익을 나누는 실제 사례도 갖고 있습니다. 제주 서쪽 한림 앞바다의 한림해상풍력(100MW)은 국내에서 운영 중인 해상풍력 단지 가운데 가장 크고, 해상풍력으로는 처음으로 '재생에너지 주민참여 제도'를 적용했습니다. 인근 세 마을 주민 1,000여 명이 총사업비의 약 5%인 300억 원을 직접 투자해 사업 지분을 갖고, 전기를 판 수익을 해마다 배당으로 돌려받는 구조입니다. 주민 1인당 연 351만 원 수준의 수익이 예상됩니다. 차병학 브이피피랩 대표는 스타트업으로서 제주의 가상발전소 시장에서 절반 이상의 자원을 운영하게 된 경험을 공유하면서, 제주에서 성공한 정책과 모델의 다른 지역으로의 확장이 스타트업의 성장과 이어질 수 있는 경로를 제시했습니다.
지현영 변호사는 미국의 경험을 반면교사로 들었습니다. 미국은 데이터센터를 어떤 에너지로 운영할지에 대한 공론화 과정이 없었기 때문에 가장 빠르고 익숙한 화석연료와 목소리가 큰 대형 사업자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흘러갔고, 그 결과 엉뚱하게 화석연료 산업이 AI를 발판으로 기사회생하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그래서 한국이 가장 먼저 "신규 데이터센터를 언제부터 24시간 청정에너지로 돌리겠다"는 원칙을 확정할 것을 제안했습니다. 같은 AI 전력 수요라도 이러한 규칙에 기반한 제도를 마련할 수 있다면 기후테크 시장을 크게 넓히는 청구서가 되고, 없으면 화석연료를 되살리는 수요가 된다는 것입니다.
■ 장면 9 — 기후테크 생태계와 함께 성장한 서밋 5주년
셋째 날 마지막 특별세션에 이유진 대통령비서실 기후에너지환경비서관이 섰습니다. 이 비서관은 다섯 해 연속 서밋 무대에 선 유일한 참가자입니다. 2022년 첫 서밋에서는 녹색전환연구소 소장으로, 시민사회의 눈으로 정책을 제안하는 쪽에 있었습니다. 지난해 6월 대통령비서실에 AI 미래기획수석실 산하에 기후·에너지 정책을 맡는 비서관 자리가 새로 만들어 졌고, 그 자리에 기후경제부 창설과 재생에너지 기반 전력시장 개편 등을 제안해 왔던 이 비서관이 임명된 것입니다. 한 참가자의 자리가 바뀌어 온 궤적은 이 서밋과 한국 기후테크 생태계가 지나온 궤적과 겹쳐 보입니다.
첫해 60명으로 시작한 서밋은 5년 누적으로는 420여 기관에서 580여 명으로 넓어졌습니다. 2025년에는 APEC 중소기업 장관회의의 공식 연계 행사가 되었고, 올해는 스타트업과 투자자, 정부·공공기관, 기업, 학계에서 150여 명이 모였습니다. 해마다 조금씩, 그러나 끊기지 않고 연결의 폭을 넓혀 온 셈입니다.
올해의 변화는 속도와 결이 다릅니다. AI 데이터센터와 첨단산업이 불러온 전력 수요가 에너지 전환을 국가 의제의 중심으로 끌어올렸습니다. 정부는 6월 반도체·피지컬 AI·AI 데이터센터를 3대 메가프로젝트로 발표했고, 장면 8에서 짚은 50GW의 새 전력 수요도 이 흐름 위에 있습니다. 같은 해에 49년 만이라는 전기요금 체계 개편(계절·시간대별 요금제), 25년 만의 발전공기업 통합 논의(장면 5), 전력감독원 신설 추진, 기후공시 법정 의무화 확정, 영농형 태양광법 제정이 잇따랐고, 10월 7일에는 K-GX 전략 발표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글로벌 기후테크 투자는 50% 넘게 늘었고(장면 2), 정부도 기후테크혁신펀드 조성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변화의 속도와 양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분명히 있습니다. 투자 금액은 늘었는데 딜 건수는 5년 최저입니다. 큰 발주서는 기존의 큰 수신자에게로 가기 쉽습니다. 원칙을 세우지 않으면 AI 전력 수요가 화석연료를 되살리는 수요가 될 수 있다는 경고도 나왔습니다(장면 8). 첫 상용 설비를 만들고 입증까지 해야 하는 스타트업에게 기회의 문이 실제로 열릴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올해 서밋이 남긴 감각은 분명합니다. 지금은 기후테크가 섹터 차원에서 한 단계 날아올라야 하는 순간이고, 동시에 그것이 가능한 순간입니다. 작게 시작해 단단하게 네트워크를 넓혀 온 서밋이 다음 해를 한국기후위크로 잇겠다고 선언한 것도 이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일 것입니다.
■ 장면 10 — 한국기후위크로 이어지는 다음 만남
2022년 소풍벤처스와 아산나눔재단이 제주에 60명을 초대하며 시작한 자리는 이듬해부터 카카오임팩트와 소풍벤처스의 공동 주최로 이어져 다섯 번째를 맞이하였습니다. 기후서밋은 이제 "1년에 한 번 모이는 행사를 넘어 한국의 기후테크 생태계를 연결하는 플랫폼"을 꿈꿉니다.
첫날 저녁 5주년 비전 선언에서 카카오임팩트와 소풍벤처스, 아산나눔재단, 디캠프, 기후솔루션을 비롯한 민·관·학 11개 기관이 2027년 9월 개최를 목표로 한국기후위크 출범을 선언했습니다. 선언문은 기후위크를 "생태계 전체의 공동 자산"으로 두겠다는 포부를 밝히며, "좋은 정책과 뛰어난 기술이 있어도 이를 현실에서 실행하는 주체가 없다면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는 문제의식 위에서 그 실행 주체들을 잇는 플랫폼을 기후위크의 비전으로 제시했습니다. 기술 발굴부터 투자, 실증, 정책 연계, 해외 진출까지 이어지는 협력 구조를 만드는 것이 목표입니다.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은 격려사에서 기후서밋의 의의를 다음과 같이 짚었습니다. "이 지구적 위기를 단일국가의 선의에 맡겨 놓을 수 있는가.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것인가. 저는 대한민국이 해야 된다고 생각하고, 여기 계신 분들이 그 선봉입니다." 위성곤 제주특별자치도지사는 "인공지능 시대 대한민국의 미래를 처음 만나는 곳으로 제주를 만들겠다"며 기후테크에 대한 의지와 정책적 지원의 준비가 되어 있음을 강조했습니다. 제주도는 8월 말 민선 9기 첫 기후경제부지사를 임명해 청정에너지 전환과 미래산업 육성을 맡겼습니다.
가능성은 참가자들의 응답에서도 읽힙니다. 서밋 뒤 설문에서 참가자들은 자사 제품에 적용할 기술을 가진 스타트업을 만났다고, 히트펌프 보급 캠페인을 함께 기획할 비영리단체와 정책을 제안할 정부기관과 투자를 협의할 투자자를 한 자리에서 만났다고, 협업으로 이어질 후속 미팅을 3건 이상 잡았다고 적었습니다. 아직 계약과 사업 성과가 된 것은 아니지만, 다음 대화를 시작할 상대와 일이 구체화된 것입니다. 한국기후위크가 그 대화가 모이는 장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WHAT TO WATCH
• 10월 중 K-GX 전략 발표 예정(장면 3). '10대 시그니처 프로젝트'는 기후테크 지원 수단을 어떻게 담아낼까요..
• 하반기 기후테크 육성 특별법안 국회 심사(장면 2). 기후테크의 법적 정의와 통계·전담기관 규정
• 연내 발전공기업 구조개편안(장면 5). 통합 법인이 무정전 외에 무엇을 성과로 고려할까요.
• 하반기 전력감독원 신설을 위한 전기사업법 개정과 계절·시간대별 요금제 전면 적용(장면 7). 전기를 사고파는 규칙이 실제로 어떻게 바뀌게 될까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본문과 관련한 다양한 피드백을 환영합니다. 정기 브리핑은 10월 26일 발행 예정입니다.
Sopoong Ventures Editorial | 2026년 10월 2일
본 브리핑은 Sopoong Ventures의 내부 의사결정 및 포트폴리오 회사의 전략 수립을 돕기 위해 작성되었습니다.
제작, 편집 및 큐레이션: 박윤중 (Research Fellow, Sopoong Ventures)